이 글에는 「옵세션」의 결말이 나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모르고 보시는 편이 훨씬 좋거든요.
나뭇가지 장난감에 빈 소원
베어는 친구 니키를 오래 좋아했지만 고백을 못 합니다. 그러다 「원 위시 윌로우」라는 나뭇가지 모양 소원 장난감을 부러뜨리면서, 니키가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소원은 빈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날부터 니키는 베어에게 매달립니다. 베어 곁에 있으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니키 주변의 다른 관계가 하나씩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 했던 베어가 얼마 못 가 그 사랑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합니다.
괴물이나 귀신은 끝까지 안 나옵니다. 제대로 작동한 소원 하나가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갑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보다, 원하던 걸 얻은 베어가 점점 겁에 질려 가는 얼굴이 더 오래 남더군요.
「세상 누구보다」라는 조건
걸리는 건 「세상 누구보다」라는 말입니다. 이 조건에는 끝이 없어요.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해야 하고, 베어 옆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니키는 이 조건을 맞추느라 자기 생활을 하나씩 내려놓고요.
그렇다고 니키를 집착이 심한 사람으로만 보면 곤란합니다. 니키는 소원에 끌려다니는 사람이고, 자기 마음을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베어가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니키는 선택권을 잃었고, 영화는 이 불편한 사실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보는 내내 떠오른 일 이야기
베어가 바란 건 아마 니키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빈 소원은 니키가 자기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상태였죠. 서로 좋아하려면 두 사람이 각자 마음을 정해야 하는데, 베어의 소원에는 니키가 동의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보는 내내 일하면서 겪는 장면이 자꾸 겹치더군요. 요즘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문장으로 적어 넘기고, 그게 그대로 실행돼 돌아오는 일을 매일 합니다. AI에게 일을 시킬 때가 딱 그렇잖아요.
예전에는 실행이 어설퍼서 목표를 잘못 적어도 중간에 멈추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과를 받아 보고서야 「아, 내가 잘못 시켰구나」 하고 알았죠. 요즘은 실행이 정확해서, 잘못 적은 목표도 그대로 결과가 되어 돌아옵니다.
예를 들어 「이탈률을 낮춰라」만 적어 두면, 나가기 버튼을 찾기 어렵게 만드는 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숫자는 좋아지는데 쓰는 사람은 불편해지죠. 목표는 달성했는데, 이걸 성공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베어의 소원도 빈 그대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소원에 없던 한 줄
베어의 소원에 빠진 조건을 적어 보면 이렇습니다.
「니키가 원하지 않으면, 이 관계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한 줄인데, 이게 없어서 사랑받는다는 결과가 니키에게는 감옥이 됐습니다.
저도 기획서를 쓸 때 원하는 결과는 꼼꼼히 적으면서, 그 결과를 겪을 사람이 싫다고 할 수 있는지는 잘 안 적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찍어 두고 버린 결말
마지막에 베어는 죽고, 니키는 소원에서 풀려납니다. 다시 자유로워졌지만, 그동안 벌어진 일까지 없던 게 되지는 않습니다.
감독은 니키까지 죽는 결말도 찍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살아남는 쪽이 더 섬뜩하다는 주변 의견에 동의해 지금 결말을 골랐다고 하네요.
저도 이 선택이 맞았다고 봅니다. 니키가 살아 있으니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다음이 자꾸 떠오릅니다. 소원은 풀렸는데, 니키는 그동안의 일을 안고 계속 살아야 하니까요.
3:2 화면비
화면비는 3:2입니다. 감독은 휴대폰으로 가로 사진을 찍었을 때의 비율이고, 누군가의 삶을 액자 안에서 들여다보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사적인 순간을 가까이서 엿보는 느낌인데, 관계가 틀어질수록 그 가까움이 숨 막히게 느껴집니다. 같은 화면 틀인데 보는 쪽 기분이 달라지더군요.
니키를 연기한 인디 네버레티가 이 변화를 끌고 갑니다. 니키가 베어에게 다가올 때마다 반가워해야 할지 불안해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짐작이 안 돼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제작비와 흥행
커리 바커 감독은 유튜브에서 코미디와 공포 영상을 만들던 사람입니다. 「밀크 앤드 시리얼」을 거쳐 「옵세션」으로 극장 관객을 만났습니다.
감독이 밝힌 제작비는 많아야 75만 달러입니다. 전 세계 극장 수입은 2026년 9월 7일 집계로 5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극장 수입이 곧 감독 몫은 아니지만, 출발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숫자입니다.
이 영화가 내세운 건 규모보다 질문 하나였습니다. 원하는 게 정확히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 질문 하나로 이만큼 많은 사람을 극장에 앉혔다는 게 저는 제일 부러웠습니다.
별점 5.0 / 5.0
아이디어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입니다. 이 끈질김이 누군가에게는 성실함으로, 누군가에게는 단조로움으로 보일 겁니다. 저는 성실함 쪽이었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베어의 소원 문장을 몇 번 되뇌었습니다. 니키라는 이름은 들어 있는데, 니키의 마음은 한 글자도 안 들어 있는 문장이었죠.
옵세션 · 감독 커리 바커 · 출연 마이클 존스턴, 인디 네버레티
출처
· 감독 인터뷰(결말을 바꾼 이유) · https://ew.com/obsession-director-curry-barker-film-original-ending-dad-told-him-change-it-11975457
· 화면비 인터뷰 · https://novastreamnetwork.com/interviews/curry-barker-talks-his-insane-new-horror-flick-obsession/
· 감독 이력(배급사 자료) · https://www.focusfeatures.com/article/obsession-s-filmmaker-takes-horror-to-the-next-scary-level
· 제작비 취재 · https://www.newyorker.com/video/watch/what-obsession-and-backrooms-mean-for-the-future-of-movies
· 흥행 집계(2026-09-07 기준) · https://www.the-numbers.com/movie/Obsession-(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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