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카와, 귀여운 얼굴에 책임을 묻다

영화4.5
치이카와, 귀여운 얼굴에 책임을 묻다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 평점 4.5점(5점 만점)

 

※ 주요 사건과 인물의 사연을 다룹니다.

 

귀여운 얼굴 앞에서는 판단이 늦어집니다. 작은 존재가 겁을 먹으면 먼저 달래 주고 싶고, 친구를 구하려 했다는 사연을 들으면 잘못을 묻는 일도 주저하게 됩니다.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그 망설임을 오래 붙듭니다. 누군가를 지키려는 마음이 다른 누군가를 밀어내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섭습니다.

 

나가노가 원작과 각본을 맡고 오이카와 게이가 연출한 첫 극장판은 원작의 세이렌 편을 옮겼습니다. 치이카와와 친구들은 초대장을 따라 섬에 도착합니다. 환대를 받던 일행은 세이렌이 주민들을 데려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토벌에 참여합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도와야 할 쪽과 물리쳐야 할 쪽은 분명해 보입니다. 영화는 그 분명함을 조금씩 허뭅니다.

 

해변에 모인 섬 주민들과 치이카와 일행해변에 모인 섬 주민들과 치이카와 일행

 

친구를 살린 마음에도 책임은 남는다

이야기 안에는 소중한 존재를 잃고 싶지 않은 두 마음이 있습니다. 친구를 살리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주민들과, 그 선택 때문에 소중한 존재를 잃고 복수에 나선 세이렌입니다. 어느 한쪽의 사연만 들으면 쉽게 편을 들 수 있습니다. 두 사연을 함께 알게 되면, 편들고 싶은 마음이 곧 난처함으로 바뀝니다.

 

주민들의 절박함은 희생당한 존재의 자리를 지우지 못합니다. 세이렌의 상실도 무관한 주민들에게 보복할 권리가 되지는 못합니다. 양쪽 모두에게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까지 흐리면, 이야기에서 가장 아픈 부분이 사라집니다. 이 영화의 불편함은 각자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그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데서 생깁니다.

 

우정이 위험해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친구를 아끼는 마음은 넓어 보이지만, 그 마음이 닿는 범위는 의외로 좁을 수 있습니다. 내 친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에는 친구 바깥의 존재를 어디까지 헤아릴 것인지가 빠져 있습니다. 《인어 섬의 비밀》은 우정의 따뜻함을 충분히 느끼게 한 뒤, 그 온기가 닿지 않는 자리까지 보게 합니다.

 

귀여운 그림에 잔혹한 사건이 끼어드는 순간, 관객은 이미 인물의 편에 서 있습니다. 인물을 좋아할수록 그가 한 선택을 쉽게 정리할 수 없게 됩니다. 낯선 악역에게라면 바로 내렸을 판단을 사랑스러운 인물 앞에서 미루고 있는 자신도 보입니다. 관객의 애정이 이야기의 불안을 키우는 셈입니다.

 

얼굴과 말을 감춘 인물이 관객을 멈춰 세운다

히토하와 후타바를 만든 과정은 이런 읽기에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나가노는 공식 인터뷰에서 두 인물에게 처음에는 얼굴과 대사가 있었지만 너무 많이 말한다고 느껴, 관객에게 얼굴과 말을 드러내지 않는 형태로 바꿨다고 밝혔습니다. 설명을 덜어 낸 자리에 두 인물의 행동과 관계가 남았습니다.

 

얼굴은 관객이 인물을 이해하는 빠른 길입니다. 눈물이나 떨리는 입술은 후회와 두려움을 읽을 단서가 되고, 대사는 그 행동에 이유를 붙여 줍니다. 히토하와 후타바 앞에서는 그런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마음을 다 알았다고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 거리가 두 인물을 간단한 선인이나 악인으로 정리하지 못하게 한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세이렌은 다른 방향에서 판단을 흔듭니다. 나가노가 성우를 고를 때 함께 본 것은 귀여움, 무서움, 노래 실력이었습니다. 오이카와 감독 역시 세이렌의 사랑스러운 면과 두려운 면을 모두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협적인 존재에게도 귀여움을 허락하는 셈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스러운 외형이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장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이카와 감독은 앞뒤 컷의 자세와 동작을 연결하고, 전투의 속도와 음향·음악이 들어오는 시점을 세심하게 조율했다고 말했습니다. 나가노도 장면을 얼마나 길게 두고 어떤 간격을 둘지는 감독의 판단에 의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짧은 만화의 인상을 영화로 이어 가려면 그 사이의 시간까지 설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귀여움과 불안이 함께 머무는 세계에는 이런 호흡이 필요합니다.

 

빛과 그림자가 얼굴 위로 나뉜 치이카와빛과 그림자가 얼굴 위로 나뉜 치이카와

 

좋아하는 인물에게도 불편한 선택을 맡겨야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미 사랑받는 캐릭터를 다루는 태도에 있습니다. 인기를 얻은 캐릭터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생깁니다. 익숙한 표정, 말투, 관계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관객이 있습니다. 그 기대를 아는 창작자는 캐릭터가 미움받을 상황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늘 같은 모습으로 웃게 하고,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게 만들기 쉽습니다.

 

그렇게 보호받는 인물에게 관객이 맡길 수 있는 감정은 점점 줄어듭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끝내 익숙한 표정으로 돌아올 것을 알면, 그의 선택을 기다릴 이유도 약해집니다. 반가움은 남지만 궁금함은 줄어드는 것입니다. 오래 사랑한 캐릭터를 다시 만나는 일과 그 캐릭터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일에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인어 섬의 비밀》은 귀여운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맡깁니다. 친구를 향한 애정이 다른 존재의 상처와 부딪히고, 이해할 만한 동기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를 만듭니다. 관객이 좋아하던 감정은 유지되지만 그 감정만으로 사건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익숙한 캐릭터에게 낯선 질문을 맡길 때, 이야기가 움직일 공간도 넓어집니다.

 

캐릭터의 표정은 지켜도 관객의 안심까지 지킬 필요는 없다

나가노의 제작 주문에는 치이카와가 초대장에 손을 뻗는 동작이 남의 것을 빼앗는 몸짓처럼 보이지 않게 해 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눈썹과 입 모양도 세밀하게 살폈다고 합니다. 캐릭터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작은 행동을 지킨 것입니다. 이 섬의 어려운 사연과 함께 놓고 보면, 캐릭터를 지키는 일과 관객을 안심시키는 일이 다르다는 점이 선명해집니다. 인물의 성격은 지키되, 관객이 늘 편안하게 바라보게 둘 필요는 없습니다.

 

익숙한 인물을 긴 이야기로 확장할 때도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장소나 큰 사건만 보태면 외형은 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여전히 같은 이유로 웃고 같은 자리에서 안심한다면, 그 인물을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좋아하던 마음이 잠시 멈칫할 순간을 지나야 전에는 보이지 않던 면이 드러납니다. 그 뒤에도 남는 애정은 처음의 호감보다 복잡하고 구체적입니다.

 

그 점에서 《인어 섬의 비밀》 속 귀여움은 맡은 일이 큽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향한 보호 본능을 불러 놓고, 그 마음이 어디까지 정당한지를 관객 스스로 살피게 합니다. 순진하게 좋아했던 얼굴을 다시 보게 만들면서도, 그 얼굴을 사랑할 이유까지 거두지는 않습니다.

 

좋아한다는 마음과 옳다고 판단하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치이카와의 섬에서 관객은 그 거리를 오래 바라봅니다. 귀여워서 먼저 편을 들었던 얼굴 앞에, 판단할 시간이 돌아옵니다.

 

출처

· 작품·제작진·시놉시스: 극장판 공식 작품 소개
· 인물 설계·캐스팅·제작 주문: 나가노 공식 인터뷰
· 장편의 동작 연결·리듬·세이렌 연출: 오이카와 게이 감독 인터뷰
· 영화의 주민과 세이렌 사연: 연합뉴스 영화 기사
· 표지 사진(꽃관을 쓴 치이카와와 하치와레), 본문 사진(해변의 주민들·그림자가 드리운 치이카와): TMDB 작품 이미지

이 글 공유하기

KEEP READING

같은 주제의 글을 우선해 함께 읽기 좋은 기록을 골랐습니다.

가능한 사랑, 평상에 앉기까지
영화

가능한 사랑, 평상에 앉기까지

이 글에는 「가능한 사랑」의 마지막 장면까지 나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됩니다. 11월 6일에 넷플릭스로도 공개되니, 극장을 놓치셨다면 그때…

오디세이, 놀란이 시계를 내려놓은 173분
영화

오디세이, 놀란이 시계를 내려놓은 173분

이 글에는 「오디세이」의 마지막이 나옵니다. 다만 3천 년 전에 결말이 공개된 이야기라 스포일러라는 말을 꺼내기가 좀 민망합니다. 그래도 놀란이 어디를 자르고 어…

옵세션, 소원은 하나도 안 틀렸다
영화

옵세션, 소원은 하나도 안 틀렸다

이 글에는 「옵세션」의 결말이 나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모르고 보시는 편이 훨씬 좋거든요. 나뭇가지 장난감에 빈 소…

COMMENTS

0/100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