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을 뜻하는 영어 paradise는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경계를 두른 공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제8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는 이 어원에서 출발하는 5분 30초짜리 영상이 있습니다.
숲과 파빌리온, 상가까지 번진 무릉도원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2005년 시작된 안양시의 공공예술 행사입니다. 여덟 번째인 이번 APAP8은 3년 만에 열렸고, 안양시가 주최하고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주관합니다. 주제는 「아르떼 엑스(Arte X) : 예술 대전환_안양 무릉도원」, 예술감독은 박철희 아시아예술경영협회 대표입니다. 9월 30일 안양예술공원 벽천광장에서 막을 올려 11월 29일까지 이어집니다.
4개국 41명(팀)의 작가가 참여했고, 전시는 네 갈래입니다. 안양파빌리온 실내의 「아이 파빌리온」은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와 조각·설치를 모았고, 미디어아트 공모로 뽑힌 작품도 여기서 상영합니다. 「오픈 그라운드」는 파빌리온 앞 광장과 안양박물관 야외, 예술공원 안 옛 「공동의 장」 일대에 놓인 야외 조각전입니다. 해가 지면 「밤의 도원경」이 켜집니다. 308 아트크루가 벽천광장 폭포를 배경으로 빛과 레이저를 쏘는 「빛의 폭포」, 레이저와 안개로 오색 구름을 띄우는 「오색운」입니다. 한국과 중국 작가의 「우리가 꿈꾸는 도원」은 아르테자이 상가동 오감갤러리와 학운공원 오픈 스쿨에서 열립니다.
모든 전시는 무료이고, 무료 도슨트 해설도 있습니다.
경계를 두른 땅에서 시작한 낱말
이번 APAP8에서 특히 좋았던 작품은 아이 파빌리온에서 상영 중인 영상, 〈낙원의 문 앞에서조차 내가 망설이는 것이 과연 이상한 일일까〉입니다. 인도 찰라에서 활동하는 작가팀 스튜디오 올레오밍구스(Studio Oleomingus)가 APAP8의 의뢰로 2026년에 만든 4K 단채널 영상이고, 길이는 5분 30초입니다.
작품 설명은 낱말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paradise의 뿌리는 「인위적으로 경계를 두른 공간」을 뜻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pairi-daēza입니다. 그리스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도 나오는 이 말은 시대와 언어를 건너며 정원이 되고 도시가 되었고, 마침내 에덴 같은 천상의 거처를 가리키게 됐습니다.
공식 스틸 두 장은 여러 그림을 콜라주처럼 겹쳐 놓았습니다. 한 장에는 호랑이 가면을 쓴 붉은 옷의 인물과 연꽃 사이를 걷는 코끼리, 대리석 계단이 한 화면에 있습니다. 다른 한 장에서는 옛 측량 지도 조각 옆에 파란 원숭이와 타일 바닥이 붙어 있고, 지도 위로 바위가 떠 있습니다.
스튜디오 올레오밍구스는 식민주의의 폭력에 가려지거나 빠진 역사와 기억을 다뤄 온 작가팀입니다. 무엇이 역사로 기록되고 어떤 목소리가 빠지는지를 게임과 전자문학의 형식으로 묻고, 2019년에는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비디오게임 전시에도 참여했습니다.
낙원을 긋는 선은 누군가를 담 밖에 세웁니다
옛 측량 지도 조각 옆에 파란 원숭이와 타일이 붙은 장면
이 영상이 좋은 이유는 낙원을 화려하게 그려 보이면서도, 낙원이라는 말에 처음부터 들어 있던 선을 함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바라는 곳을 가리키는 낱말이, 처음에는 누군가 담을 둘러 안과 밖을 나눈 땅을 뜻했습니다. 담을 두른다는 것은 누군가는 안에 들이고 누군가는 밖에 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이 선을 지도로 옮겨 갑니다. 낙원은 자세히 묘사될수록 오히려 산 너머와 비밀스러운 계곡, 지도의 가장자리처럼 닿을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곳에 놓였습니다. 낙원을 또렷하게 그릴수록 사람들은 그곳을 더 먼 지도 끝으로 밀어낸 셈입니다. 그래서 작가팀은 이 낙원을 「영원히 미뤄지는 낙원」이라고 부릅니다.
지도는 쓰임이 둘인 도구입니다. 작품 설명대로 지도는 세계를 나누고 정복하는 도구였고, 동시에 아직 없는 장소를 상상하며 바람을 담는 수단이었습니다. 선을 그어 땅을 빼앗던 손과 아직 없는 곳을 그려 보는 손이 같은 지도를 쥐고 있었던 겁니다. 작가팀은 상상으로 그린 지도의 윤곽이 어떻게 근대의 윤곽을 그려 왔는지 살펴보자고 권합니다.
제목 속 망설임도 이 선에 닿아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낙원의 문 앞에서, 들어가기 전에 그 담이 누구를 밖에 세웠는지부터 묻는 망설임입니다. 작가팀은 영문 설명에서 신화를 믿는 데 필요한 믿음과, 그 믿음이 열광으로 넘치지 않게 막는 품위를 함께 말합니다. 낙원을 바라는 마음은 지키되, 그 바람이 남의 땅에 선을 긋는 일로 번지지 않게 하자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작가팀이 자기 작업을 기존 역사에 덧붙이는 「정오표」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영상은 이미 그어진 선에서 빠진 이름을 덧붙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안과 밖이 한 화면에 겹친 콜라주도 그 덧붙임의 모양인 셈입니다.
무릉도원을 주제로 내건 행사에 낙원의 선을 되묻는 영상이 함께 걸려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낙원을 그리자는 축제 안에서, 이 영상 한 편이 그 낙원에 누가 들어가는지를 묻고 있는 셈입니다.
아쉬운 점
전시가 안양예술공원과 안양파빌리온, 아르테자이 상가 오감갤러리, 학운공원 오픈 스쿨 네 곳에서 열려, 한 번에 다 보려면 동선을 미리 짜 두는 편이 좋습니다. 「밤의 도원경」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만 켜지고, 「빛의 폭포」는 매 정시부터 15분 동안만 상영되니 시간을 맞춰 가야 합니다.
다녀오기 전에
모든 전시가 무료라 부담 없이 들를 수 있습니다. 10월 16일부터 11월 6일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는 야외 주요 작품을 전문 해설사와 함께 도는 「APAP8 스페셜 투어 나이트」가 열리고, 참가비는 5천 원입니다. 올레오밍구스의 영상은 5분 30초로 짧으니, 아이 파빌리온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시길 권합니다.
별점 4.5 / 5.0
무릉도원을 내건 축제에서, 낙원에 그어진 선부터 보게 만드는 영상을 만났습니다.
제8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8) · 9월 30일부터 11월 29일까지 · 안양예술공원·안양파빌리온 일원 · 무료
출처
· 개막·장소·전시 구성·야간 상영 시간·투어(STN뉴스, 2026년 10월 1일) · https://www.stnsport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526
· 개막·3년 만·4개국 41명(팀)·무료(오마이뉴스, 2026년 10월 1일)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2020
· 예술감독 선임(쿠키뉴스) · https://www.kukinews.com/article/view/kuk202604010184
· 작가·작품 정보와 설명(APAP8 공식 사이트 전시) · http://2026.apap.or.kr/ko/exhibition/
· 표지 사진(APAP8 공식 사이트, 스튜디오 올레오밍구스 〈낙원의 문 앞에서조차 내가 망설이는 것이 과연 이상한 일일까〉 스틸) · http://2026.apap.or.kr/assets/artists/e-pavilion-media/studio-oleomingus/work-1-1.webp
· 본문 사진(APAP8 공식 사이트, 같은 작품 스틸) · http://2026.apap.or.kr/assets/artists/e-pavilion-media/studio-oleomingus/work-1-2.we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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