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 거품 목욕과 대출 서류 사이

영화5.0
빅쇼트, 거품 목욕과 대출 서류 사이

이 글에는 「빅쇼트」의 결말까지 나옵니다. 다만 이 영화의 결말은 2008년 금융 위기 그 자체라, 뉴스를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아시는 결말입니다.

 

맨발과 헤비메탈

2005년, 한 펀드 매니저가 미국 주택 담보 대출 서류를 한 장씩 넘겨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합니다. 그 사람만 빼고 아무도 그 서류를 읽지 않았습니다.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마이클 버리입니다. 사무실에서 신발을 벗고 다니고, 머리가 복잡하면 헤비메탈을 크게 틀어 놓고 드럼을 칩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는 서툴지만, 숫자는 끝까지 읽습니다. 버리가 읽어 낸 건 이것이었습니다. 미국 집값을 떠받치는 대출이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가 있고, 2007년쯤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버리는 은행들을 찾아가 그 대출이 망하는 쪽에 거는 보험, 신용부도스와프를 삽니다. 은행 직원들은 웃으면서 팔아 줍니다. 집값이 떨어질 리 없다고 다들 믿던 때라 공돈처럼 보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 보험은 매달 보험료가 나갑니다. 시장은 한참 동안 꿈쩍도 안 하고, 버리의 펀드에서는 돈만 빠져나갑니다. 투자자들은 화를 내고, 버리가 돈을 못 빼게 막자 소송까지 겁니다.

 

거품 목욕과 생선 스튜

영화가 한창일 때 마고 로비가 거품 목욕을 하며 카메라를 보고 금융 용어를 설명합니다. 다 듣고 나면 웃기기보다 조금 화가 납니다.

 

이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세 번 나옵니다. 요리사 앤서니 버데인은 사흘 지난 넙치를 생선 스튜에 섞어 팔면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설명합니다. 가수 셀레나 고메즈는 카지노 블랙잭 테이블에서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함께, 이번 판에 이겼으니 다음 판도 이길 거라 믿는 착각으로 합성 CDO를 풀어 줍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기획자의 눈으로 봤습니다. 금융 위기 영화가 부딪히는 벽은 관객이 용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그 벽 앞에서 설명을 줄이거나, 대사에 용어를 욱여넣습니다. 애덤 매케이 감독은 아무도 안 읽을 내용을 관객이 가장 눈을 떼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맡겼습니다. 관객은 웃다가,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데서 멈춥니다.

 

플로리다의 빈집

버리의 거래 소식은 도이치뱅크의 채권 영업맨 재러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에게 흘러가고, 베넷은 같은 거래를 팔러 다닙니다. 베넷이 전화를 잘못 건 곳이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의 펀드입니다. 은행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바움은 베넷의 말을 믿는 대신 팀을 데리고 플로리다 남부로 내려갑니다.

 

마크 바움 팀과 재러드 베넷마크 바움 팀과 재러드 베넷

 

거기서 본 건 사람이 안 사는 동네였습니다. 대출을 내준 중개인들은 갚을 능력을 따지지 않고 서류를 통과시켰다고 웃으면서 털어놓습니다. 보고서에는 안전하다고 적힌 숫자가 현장에서는 빈집으로 서 있었습니다. 바움 팀은 그 빈집들을 보고 나서야 돈을 겁니다.

 

라스베이거스 증권 포럼

라스베이거스 식당에서 CDO 운용자를 만난 마크 바움라스베이거스 식당에서 CDO 운용자를 만난 마크 바움

 

이야기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증권화 포럼으로 모입니다. 은행 사람들은 연체가 늘고 있다는 말에도 태평합니다. 바움은 그곳에서 만난 CDO 운용자에게서, 대출 채권 위에 쌓아 올린 합성 CDO 시장이 실제 대출 시장보다 스무 배나 크다는 말을 듣습니다. 바움은 그 자리에서 세계 경제 전체가 같은 판에 올라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증권 포럼에 간 찰리 겔러, 제이미 시플리, 벤 리커트라스베이거스 증권 포럼에 간 찰리 겔러, 제이미 시플리, 벤 리커트

 

같은 포럼에 작은 펀드를 굴리는 두 젊은 투자자 찰리 겔러와 제이미 시플리도 와 있습니다. 은행 로비 탁자에 굴러다니던 베넷의 자료를 보고 뛰어든 사람들입니다.

 

둘이 큰 거래를 따내고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둘을 도와준 은퇴한 트레이더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가 찬물을 끼얹습니다. 지금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쪽에 돈을 건 거라고, 우리가 맞으면 사람들이 집과 일자리를 잃는다고.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장면입니다.

 

마크 바움의 마지막 매도

결국 이들이 맞습니다. 바움이 업계 토론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이, 베어스턴스 주가가 10분 만에 38% 떨어지고 은행은 곧 무너집니다. 바움은 끝까지 버티다 가장 늦게 팔아 10억 달러 넘게 벌지만, 은행도 정부도 책임지지 않을 거라며 씁쓸해합니다.

 

영화는 자막으로 끝납니다. 이 위기로 감옥에 간 은행 사람은 트레이더 단 한 명이었고, 은행들은 몇 년 뒤 CDO에 「맞춤형 트랜치 상품」이라는 새 이름을 붙여 다시 팔기 시작했다고요.

 

마이클 루이스의 2010년 논픽션을 옮긴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고, 작품상과 감독상, 크리스천 베일의 남우조연상, 편집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제작비 5천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1억 3천만 달러 넘게 벌었습니다.

 

별점 5.0 / 5.0

모두가 집값이 오른다고 할 때 떨어지는 쪽에 건 사람들이 이기는 영화인데, 다 보고 나면 아무도 이긴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서류를 끝까지 읽은 사람은 몇이었을까요. 저라면 그 서류를 읽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빅쇼트 · 감독 애덤 매케이 · 출연 크리스천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

 

출처

· 영화 정보·줄거리·수상(위키백과) · https://en.wikipedia.org/wiki/The_Big_Short_(film)
· 마이클 버리(위키백과) ·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Burry
· 마고 로비 거품 목욕 장면 뒷이야기(CinemaBlend) · https://www.cinemablend.com/movies/margot-robbies-iconic-bubble-bath-scene-in-the-big-short
· 카메오로 금융을 풀어낸 방식(Bloomberg) ·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5-12-10/how-the-big-short-hollywood-ized-the-financial-collapse
· 리처드 세일러와 셀레나 고메즈 장면(DNAinfo) · https://www.dnainfo.com/chicago/20171009/hyde-park/richard-thaler-selena-gomez-movie-big-short
· 크리스천 베일의 드럼 장면(Louder) · https://loudersound.com/news/christian-bale-s-pantera-mastodon-crash-course
· 맨발과 드럼(롤링스톤 리뷰) · https://www.rollingstone.com/movies/movie-reviews/the-big-short-121282/
· 벤 리커트의 대사(위키인용집) · https://en.wikiquote.org/wiki/The_Big_Short_(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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