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깊이 쓴 사람이 덜 일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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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깊이 쓴 사람이 덜 일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

어느 로펌의 두 부서가 똑같은 AI 도구를 받았습니다. 한쪽 매니저는 「문서를 더 빨리 쓰는 도구」라고 소개했고, 다른 쪽 매니저는 「어떤 일이 제일 지루한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도구를 더 잘 쓴 쪽은 질문을 받은 부서였는데, 늘 쓰던 잣대로 재면 이쪽이 덜 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더 빨리」로 받은 도구는 사람을 부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스탠퍼드 인간중심AI연구소가 10월 7일 소개한 연구에서, 아르빈드 카루나카란 교수 연구팀은 이 두 부서를 2년 가까이 지켜봤습니다. 두 부서는 업무 분야와 규모, 급여·승진 구조까지 거의 같았습니다. 「더 빨리」를 들은 첫째 부서의 패럴리걸(변호사를 돕는 직원)들은 기계 부품 하나가 된 것 같다고 했고, 도구를 하던 일에만 썼습니다.

 

새 쓰임새를 찾지 않은 까닭은 첫마디에 있었다고 봅니다. 「더 빨리」는 지금 하는 일이 정답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답이 정해진 일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속도를 올리는 것뿐이고, 속도로 재는 자리에서는 내 몫이 점점 좁아집니다. 그런 도구를 굳이 더 만져 볼 마음이 들기는 어렵습니다.

 

「뭐가 지겹나요」로 받은 도구는 일을 넓혔습니다

둘째 부서 매니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떤 일이 제일 지루한가요? 늘 해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못 한 일은 무엇인가요? 이 부서는 도구로 법률 조사와 사건 분석을 시작했고, 변호사들의 법률 전략 회의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나섰습니다. 첫째 부서보다 도구를 58% 더 썼고, 70% 더 많이 시험해 봤습니다.

 

회의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회의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지겨운 일을 물으면 사람은 자기 일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덜어 낼 일을 고르다 보면 그 시간에 하고 싶던 일도 같이 떠오릅니다. 무엇을 덜고 무엇을 더할지 고르는 순간, 그 사람은 일의 주인이 됩니다. 법률 조사와 전략 회의는 그렇게 나온 답이었을 겁니다. 두 매니저가 건넨 도구는 같았지만 도구를 바라보는 자리가 달랐습니다. 「더 빨리」는 회사 쪽에서 본 도구이고, 「뭐가 지겹나요」는 일하는 사람 쪽에서 본 도구입니다. 내 쪽에서 본 도구여야 사람은 시키지 않은 쓰임새까지 찾아 나섭니다.

 

물론 질문 한마디로 된 일은 아닙니다. 둘째 부서에는 교육과 매주 노하우를 나누는 점심, 혼자 익히라고 비워 둔 시간이 있었습니다. 카루나카란 교수는 이런 받침이 없으면 직원들이 약속을 빈말로 듣는다고 봤습니다.

 

AI를 깊이 쓴 사람이 건수로는 덜 일한 사람이 됐습니다

패럴리걸은 원래 분기나 한 해에 처리한 사건 수로 평가받습니다. AI로 깊은 조사와 분석을 한 사람들은 더 값진 일을 했지만 시간이 더 들어 맡은 사건이 줄었습니다. 카루나카란 교수는 건수가 이 새 일에 맞는 잣대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AI가 덜어 준 시간을 더 깊은 일에 쓰면 옛 잣대는 그것을 「덜 했다」로 적습니다. 같은 일을 더 빨리, 더 많이 처리한 쪽이 숫자로는 이깁니다. 그렇다면 첫째 부서 매니저의 「더 빨리」는 실수라기보다 회사가 무엇을 세는지 정직하게 알려 준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잣대가 그대로인 회사에서는 「재미있는 일을 해 보라」는 말을 믿고 따른 사람의 건수가 먼저 줄어듭니다. 그걸 지켜본 동료라면 다음부터는 하던 일만 빨리 하는 쪽을 고르기 쉽습니다.

 

둘째 부서가 건수로 평가받으면서도 AI를 깊게 쓴 것은, 첫 질문과 받침이 잣대를 한동안 이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 일이 평가 때마다 「덜 했다」로 적힌다면, 그 승리가 오래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길게 보면 AI를 어디에 쓰라고 직원에게 정말로 말해 주는 것은, 매니저의 첫마디보다 실적표입니다. 질문과 받침에 실적표까지 맞춰야, 같은 도구가 그 새 일을 계속 맡습니다.

 

내 실적표는 무엇을 세고 있을까요

이 구조는 로펌에만 있지 않습니다. 처리한 문의 건수, 쓴 보고서 장수, 마감한 일의 개수로 일을 재는 자리라면 어디든 생길 수 있습니다. AI 덕에 고객 불만 하나를 끝까지 파고들어 같은 불만이 다시 안 나오게 만들었다면, 그달 처리 건수는 오히려 줄어 있을 수 있습니다. 숫자는 줄었는데 일은 더 잘한 달입니다. 영업이라면 방문 횟수, 마케팅이라면 만든 콘텐츠 개수가 그 자리에 들어갑니다. 이런 달이 쌓일수록 AI로 더 깊이 일한 사람은 평가 면담에서 내세울 숫자가 줄어듭니다.

 

사무실 책상에서 서류를 들고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직원사무실 책상에서 서류를 들고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직원

 

둘째 부서의 두 질문은 어느 회사에서든 바로 꺼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제일 지겨운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려운 쪽은 그다음입니다. 그 답으로 생긴 새 일을 평가에서 어떻게 셀지 같은 자리에서 정하지 않으면, 질문은 좋은 분위기로 끝나고 다음 분기 실적표는 다시 건수만 셉니다. 질문은 사람을 새 일로 데려가고, 잣대는 그 사람이 거기 남을지를 정합니다.

 

AI로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일을 재는 잣대는 그대로라면, 가장 깊이 들어간 사람이 가장 느린 사람으로 보이게 됩니다. 지금 내가 AI로 해낸 일은 우리 회사의 어떤 숫자에 잡히고 있을까요. 잡히지 않는다면, 그 일은 누구 눈에 보이고 있을까요.

 

출처

Dylan Walsh. Want Employees to Embrace AI? Stop Selling It as a Productivity Tool. Stanford HAI, 2026년 10월 7일. https://hai.stanford.edu/news/want-employees-to-embrace-ai-stop-selling-it-as-a-productivity-tool

 

본문 사진: 회의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GB The Green Brand(Unsplash License). https://unsplash.com/photos/-QfEQhI0OlI

 

본문 사진: 서류를 들고 모니터를 보는 직원, cornerstone accounting Services(Unsplash License). https://unsplash.com/photos/G90H3ylKC7E

 

표지 사진: 헤드셋을 쓰고 일하는 상담 센터 직원들, BaljkanN4(Unsplash License). https://unsplash.com/photos/wnpf3Q5pk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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